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레디 머큐리 (문단 편집) === 보컬리스트로서 === ||{{{#!wiki style="margin:-5px -10px" [YOUTUBE(JRXAYp5faQY)]}}}|| || '''{{{#ffffff 198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의 [[Bohemian Rhapsody]] 라이브}}}''' || '''폭발적인 가창력'''의 소유자이자 록 음악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다. 물론 록 보컬계에서는 여러 밴드들의 보컬리스트들이 높은 평가를 받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프레디 머큐리는 [[로버트 플랜트]], [[로니 제임스 디오]] 등과 더불어 가창력 부문에서 본좌급에 위치해 있는 아티스트이다. 특히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프레디 머큐리가 '''록 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폭넓은 소화 능력을 보유한 보컬'''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기라성 같은 재능의 소유자들이 즐비한 록 음악사에는 '프레디보다 훨씬 큰 성량과 넓은 음역대를 가진 보컬도 있고 특정 스타일의 노래에서는 프레디를 능가하는 소화력을 지닌 '전문성이 프레디보다 투철한 보컬'도 있었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처럼 록 음악 외의 다양한 음악 장르[* 오페라틱, [[소울 음악|소울]], [[디스코]], 흑인 음악 등.]의 감성을 록의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와 자연스럽게 소화해낸 보컬은 그 외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퀸의 음악이 당대의 전문가들에게 '슈퍼마켓 음악'이라고 폄하당한 것도 역설적으로 이런 다양함에 있었는데, 이토록 폭넓은 퀸의 음악 세계를 이음매나 빈틈 없이 완전무결한 형태로 표현해낸 프레디 머큐리의 다채로운 보컬은 그야말로 불세출의 경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퀸이 평론가들에게 한창 까일 때에도 멤버들의 세션 실력으로 까인 적은 없었다.] 애초에 쿵쿵따 드럼 소리뿐인 [[We Will Rock You]]나 기타 사운드 거의 없이 베이스 리프로 진행되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와 같은 곡을 빈틈없이 완벽한 노래로 만들었던 건 프레디의 보컬과 라임, 리듬 감각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 노래의 작곡가인 [[존 디콘]]은 프레디에게 흑인스러운 느낌을 담아주기를 원했고, 실제로 발매 후 이 노래를 들은 미국 흑인들은 퀸이 '''흑인 밴드인 줄 알았다고 한다.'''] 대중들에게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테너]] 성종의 보컬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테너가 아닌 [[바리톤]] 성종일 가능성이 높다.[[http://www.xportsnews.com/jenter/?ac=article_view&entry_id=715502&_REFERER=http%3A%2F%2Fsearch.naver.com%2Fsearch.naver%3Fie%3Dutf8%26where%3Dnews%26query%3D%25ED%2594%2584%25EB%25A0%2588%25EB%2594%2594%2520%25EB%25A8%25B8%25ED%2581%2590%25EB%25A6%25AC%26sm%3Dtab_tmr%26frm%3Dmr%26sort%3D0%26url%3Dhttp%253A%252F%252Fwww.xportsnews.com%252F%253Fac%253Darticle_view%2526entry_id%253D715502%26ucs%3D8vaH8uRcOqsf|#]][* 프레디 머큐리와 마찬가지로 하드 록 계열에서 바리톤인 보컬리스트로는 [[로저 달트리]], [[액슬 로즈]], [[데이비드 커버데일]] 등이 있다.] 실제로 같이 작업한 적이 있던 [[몽셰라 카바예]]는 이를 간파하고 프레디 머큐리에게 "당신의 성부는 바리톤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굳이 고음을 부르지는 말아요. 고음역대는 소프라노인 내가 할게요."라고 했고, 이에 프레디는 "하지만 테너가 아닌 바리톤 성부로 부르면 사람들이 저인지 모를 것 같다."며 걱정했다고 한다. 또한 대표적인 테너 보컬 중 한명인 [[로버트 플랜트]]가 전성기 시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공연에서도 3옥타브 초중반의 고음을 쉽게 뽑아냈던 것과 달리[* 유튜브에 영상으로도 풀려있는 1970년 로열 앨버트 홀 라이브가 대표적인데, 이 공연 당시 로버트 플랜트는 컨디션이 매우 나쁜 상태였음에도 원키 그대로 곡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여담으로 로버트 플랜트가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안 그래도 높은 원곡보다 더욱 더 높게 부른다.] 프레디 머큐리는 컨디션이 최상인 공연에서도 3옥타브 초반의 곡들은 대부분 2옥타브 후반대로 낮추어 불렀는데, 이것의 이유가 프레디 머큐리의 성부가 바리톤이기에 여러 번 녹음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아닌 라이브에서는 3옥타브 대의 초고음을 한 번에 깔끔하게 내지르긴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다만 성부라는 것이 칼로 무 자르듯 정확하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고, 프레디 머큐리처럼 성부가 애매한 사람들은 그날의 컨디션마다 테너일수도 바리톤일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프레디 머큐리는 바리톤이라기엔 음색이 얇기에, 흔히 말하는 ‘테리톤’일 가능성이 높다.[* 이와 비슷한 보컬로는 프레디 머큐리가 영향을 받은 가수인 [[로저 달트리]]가 있다. 로저 달트리 또한 성부는 바리톤이지만 음색이 다소 얇은 편이었으며, 이쪽은 당대 기준 매우 안정된 발성을 바탕으로 라이브에서도 3옥타브 대의 고음과 샤우팅, 스크리밍을 원키로 구사하였다.][* 사실 바리톤이나 테너란 용어 자체가 성악에서 나온 용어인데, 성악가들은 소화하는 음역에 따라 저음은 굵은 음, 고음은 얇은 음으로 나뉘지만 대중가수들은 발성법이 각자 천차만별로 다르기에 이런 식으로 딱 나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목소리가 굉장히 얇은 [[G-DRAGON]]은 테너라고 보기엔 음역대가 지나치게 낮고, 베이스 음역대는 아니다. 그렇다면 비슷한 음역대를 소화하는 [[김동률]]과 마찬가지로(물론 김동률이 더 넓다) 바리톤인가? 이처럼 성악 용어를 대중음악에 대입하면 딱 들어맞진 않는다.] 보컬로서 역량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의 대학 시절부터였다. 단 그때에는 천하의 프레디 머큐리도 실력이 다듬어지기 전이라, 목소리 기복이 심하고 다소 거친 면을 보였다고 한다.[* 로저의 말을 빌리자면 '''"양이 시끄럽게 우는 것 같았다"'''정도의 목소리였다.] 주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무척이나 예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목소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혼자 엄청나게 연습을 했는지 퀸이 결성될 즈음에는 이미 테크닉적으로 거의 안정된 보컬이었다.[* 종합해 보면, 프레디는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만들어낸''' 괴수인 셈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어릴 적 합창부 시절을 제외하고 누군가에게 정식으로 노래를 배운 적이 없었다. 이는 대다수의 록 보컬리스트들의 특징으로, 이들은 정석적인 발성이 아닌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창법을 썼기 때문에 금방 목이 상하고 컨디션의 기복이 큰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본인이 존경한 보컬리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대표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 [[로버트 플랜트]], [[로저 달트리]] 등에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에서는 엘비스의 느낌으로 곡을 소화하며, [[It's Late]]에서는 로버트의 느낌으로 곡을 소화해낸다. 가끔씩 맑은 가성으로 성량이 풍부한 오페라적 창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만큼 엘비스 풍의 [[로큰롤]]부터 [[레드 제플린]] 풍의 [[하드 록]], 심지어 오페라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그에 걸맞는 보컬을 소화할 수 있었기에, 대중들과 평론가들 모두 프레디를 보고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폭넓은 소화 능력을 보유한 보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보통 [[로저 달트리]], [[로버트 플랜트]]와 같이 “[[카멜레온]]같은 보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프레디 머큐리는 젊을 적에 엄청난 미성이었다가, 나이가 들자 창법을 바꾸어 그 특성을 많이 잃은 케이스이다. 성대 질환이 생기고 담배를 피워 피치가 조금 떨어지고 음색이 변한 감이 있지만 그보단 창법의 변화로 내츄럴 보이스를 내지 않고 먹는 소리를 사용하게 된 것이 차이점을 도드라지게 한 이유이다. 주로 연대별로 그 차이가 크게 드러나는데, 70년대 보컬은 자신의 미성을 십분 활용해 모험적인 발성은 최대한 삼가며, 성대가 벌어지지 않게 노력한 상태에서 고음이 되면 후두가 크게 올라가는 형식의 [[벨팅]] 창법을 주로 사용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전체적으로 인골라에 빠져서 노래했으며, 성대가 벌어지고 갈라지는 탁성을 주로 썼다. 소리도 조심스럽게 가리던 취향에서 가성이든 쥐어짜는 탁성이든 되는 대로 뽑아내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사실 프레디 머큐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목소리는 다수가 1980년대 스타일이다. 미성이었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굉장히 중성적인, [[야누스]]적인 미성이었다. 남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목소리가 혼재된 듯한 그 마성의 목소리는 지금도 경탄의 대상.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 전성기는 1979 말 ~1982년 중반 정도이다.[* 라이브 투어로 치면 Crazy 투어부터 유럽 Hot Space 투어까지.] 하지만 1982년도 후반으로 접어 들수록 계속되는 공연으로 점점 목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프레디의 지속적인 흡연으로 인해 목소리가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건 록, 특히 고음 위주로 노래를 부르는 [[하드 록]] 및 [[메탈(음악)|헤비 메탈]] 보컬리스트들이 예외 없이 겪는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목 관리를 잘 하지 않고 전성기 시절 역량을 다 소화해서 현재는 제대로 된 보컬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이안 길런]], [[액슬 로즈]] 등이 있다. 굳이 하드 록으로만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리암 갤러거]] 역시 목을 갈아마시는 창법으로 인해 목이 많이 상해서 한때는 액슬 로즈 급으로 보컬을 소화하지 못하다가, 꾸준한 관리와 창법 변경을 통해 현재에는 제2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회복하였다. 오히려 프레디 머큐리는 기복은 있었어도 커리어 말기까지 보컬 기량 자체는 거의 떨어지지 않은 케이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발매한 Hot space 앨범이 실패했으며 1983년도에는 아예 공연을 하지 않고 휴식기를 가졌다.[* 사실 이때도 남미에서 [[Hot Space]] 공연을 하려 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는 불명이나 취소되었다.] 1984년도에 The Works 앨범과 함께 다시 투어를 했으나 이 시기는 프레디의 컨디션 기복이 엄청나게 심했던 시기였다. 목 상태는 지난 투어로 인해 나빠져 있었고 흡연으로 목소리도 두터워져 본 고장 런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눈물 날 정도로 삑사리를 냈다.[* 그런데 9월 5일 런던 공연에서는 [[Under Pressure]]의 '''3옥타브 라(A5)''' 파트를 '''4옥타브 파(F6)'''로 올려서 불렀다. 사실 프레디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Under Pressure만은 잘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변화된 목소리에 적응된 프레디는 컨디션이 좋았던 날에는 두터워진 목소리로 고음을 지르는데 전성기만큼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 두터운 고음이 전성기 고음보다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시티 라이브나 슈가르트 공연에서 느낄 수 있다.] 1984년도 마지막 공연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반투스탄]]들 중의 하나인 보푸사츠와나의 선 시티[* Sun City, 현 남아공 노스웨스트 주에 있는 대규모 콘도, 카지노 시설이다. 남아공 법에서 카지노를 영업하면 걸리지만, 반투스탄인 보푸사츠와나에서는 남아공 법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이용해 법을 우회하여 만들어졌다. 이 시설을 이용해 백인들한테 돈을 어미무시하게 벌었다고 한다.][* 참고로 공연은 썬 씨티 내부의 공연장인 슈퍼 보올에서 진행했다. 실내 공연장치곤 규모가 커서 현재까지도 많은 뮤지션들이 공연을 가는 곳이다.]에서 가졌는데[* 하지만 그때 당시의 뮤지션들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발하여 남아공에는 공연을 하러 가지 않았는데, 퀸은 그걸 무시하고 더군다나 아파르트헤이트의 최대 병크인 반투스탄까지 가서 공연을 했으니... 그리하여 언론에서 인종차별 밴드라고 지탄을 받게 되었다.] 변화된 목소리에 완벽히 적응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총 9일간의 공연[* 단, 10월 7일의 공연 도중, 4번째 곡 [[Somebody to Love(퀸)|Somebody to Love]]를 부르다 목에 생긴 혹으로 인해(이 혹 때문에 그 전설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없없을 뻔 했다.)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프레디가 백스테이지로 뛰쳐나가고 조명이 전부 꺼진 후에, 프레디가 나오길 기대하던 관중들이 발구르기로 쿵쿵따 리듬을 만들며 We Will Rock You를 떼창하던 도중, 썬시티 라이브 기획자인 Hazel Feldman이 라이브가 취소되었다고 관중들에게 이야기했다. 이때 프레디는 목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이 공연을 제외하면 총 8일간의 공연이다.] 에서 10월 19일 공연에서 프레디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Live Aid급으로 불러냈다.[* 슬프게도 10월 19일 공연만 음원자료가 남아 있다. 19일 컨디션도 좋았는데 이 전 9개의 공연은 자료가 없다는 게 참 아쉬울 따름이다.] 1985년도는 브라질 리우에서 역대급 관중을 데리고 공연을 했는데 이는 유로 공연 최다 관중 콘서트로 알려져 있다. 이 때 첫째날 콘서트에서는 그 어렵다는 Somebody to Love를 전성기급으로 불러냈다.[* 지역 방송국에서 유출된 화질과 음질이 나쁜 영상은 존재하지만, 공식 발매된 앨범에서는 이 부분이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가진 콘서트에서도 '''2옥타브 라#(A#4)''' 고음을 5초 동안 흔들림 없이 부르는 등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퀸은 일본만 가면 [[Sheer Heart Attack]] 투어와 대부분 일본 투어의 첫 날을 제외하면 컨디션이 늘 안좋았다. 하지만 이 때는 퀸의 마지막 일본 공연인 오사카 공연만 제외하면 아주 컨디션이 좋았다. 그런데 하필 도쿄에서는 3번 공연을 가졌는데 그 중 가장 컨디션이 좋지 않은 마지막 날 공연만 영상자료가 남아있다.(물론 도쿄 공연 중 에서지, 실제로는 최악의 컨디션을 자랑하는 다른 The Works 투어에 비하면 꽤나 좋은 컨디션이다.)] 그리고 찾아온 라이브 에이드에서는 2옥타브 후반대의 고음을 너무나도 편한 표정으로 내지르며 역대급 무대를 생중계로 보여주어 퀸의 전성기를 다시 한 번 이끌었다.[* 라이브 에이드는 사실 프레디가 의사와 상담한 결과 프레디의 목에서 혹이 발견돼서 의사조차 공연을 말렸으나, 프레디가 강행한 것이다. 그런데도 목에 혹 난 상태로 '''3옥타브 도(C5)'''를 지르는 프레디는 그야말로 괴수가 따로 없다.]다만 여기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있는 것이 라이브 에이드에서 프레디가 최악의 컨디션에서 공연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목에 혹이 난 상태랑은 별개로 이 공연에서 프레디의 컨디션은 정말 최상이었다. 1985년도에 프레디는 여전히 기복이 심했고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최대 고음이 '''2옥타브 라#(A#4)''' 였지만 이 날 [[We Are the Champions]]를 부를 때 '''3옥타브 도(C5)'''를 찍고 후렴부분을 전부 높혀서 불렀으며 Radio Gaga 역시 낮춰부르는 일 없이 깔끔하게 소화했다.[* 참고로 프레디 머큐리는 [[We Are the Champions]] 후렴 부분 고음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의 라이브를 제외하면 다 낮춰불렀다, Radio Gaga 역시 가사 중 "You had your time" 을 거의 모든 라이브서 낮춰 부른 것을 생각하면 역시 좋은 컨디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아무래도 라이브 에이드 때 부른 노래들은 퀸의 단독콘서트에서는 공연 후반부에 나오는 곡이라 프레디의 컨디션이 낮아져 있는 상태인 단독콘서트와는 컨디션 비교가 힘들다곤 하지만 1985년 콘서트 곡리스트 초반부에는 프레디가 부르기 힘들어했던 Somebody to Love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곡이 워낙 고음이 많이 들어가있는 곡이라 해당곡을 들어보면 프레디의 컨디션을 가늠할 수 있고 훌륭한 공연도 많지만 라이브 에이드 만큼의 가창력이 나오긴 힘들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근접한 공연이 리오 1차, 도쿄 1,2차 공연 정도다.] 아무쪼록 그렇게 라이브 에이드에서 최고의 공연을 펼쳐 전성기를 다시 연 후 1986년도에 가진 Magic 투어는 전반적으로 그리 좋았던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7월 2일의 취리히 공연과 7월 12일의 웸블리 공연 때 컨디션이 굉장히 안좋았다. 그래도 84년도의 The Works 투어에 비하면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관객들과 함께하는 공연들은 명장면을 연출한다.[* Radio Gaga나 프레디의 에롭타임이 그렇다.] 이렇듯 프레디는 전문적인 보컬 수업은 받은 적이 없지만 아름답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나이를 먹고 계속되는 투어로 1980년대 중, 후반의 공연에서는 목을 좀 사리는 모습이 종종 보이지만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몇몇 사람들이 웸블리 둘째 날 라이브를 보고 프레디의 가창력에 의심을 가지는데 전날공연에서 비까지 맞으면서 불러서 해당 콘서트는 최악 중 최악의 컨디션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이렇다보니 목소리를 덧붙이는 오버더빙이 많은 부분에서 사용되었다. 실제 공연에서는 삑사리나 갈라짐이 거의 모든 곡에서 나왔다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관객과의 에롭타임에 이어서 부른 Under Pressure는 레전드로 남게되었고 의외로 낮춰부르긴 했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도 무난하게 잘 불렀다. ] 보통 라이브에서는 3옥타브 대의 진성 고음을 잘 보여주진 않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CRm2tZJRbn8|Bohemian Rhapsody (Queen-Live In Newcastle: 12/4/1979)]] 3분 21초 3옥타브 도 라이브 영상.][* 컨디션이 매우 좋은 공연에서도 원곡의 3옥타브대의 고음을 대부분 2옥타브 후반대로 처리하는 편인데, 못 낼 것 같아서 못 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로 컨디션 조절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https://youtu.be/eLsKKgcCXmo|컨디션 조절을 할 필요가 없을 경우엔 이 정도]]이다. 저 애드립을 빼면 죄다 립싱크를 한 날이었기 때문.], 가성 고음은 의외로 많은 편이다. 3옥타브 후반대~4옥타브 초반대의 고음을 자유자재[* 컨디션이 상당히 안 좋았던 웸블리 2번째 날 공연에서도 '''3옥타브 라#(A#5)'''의 엄청난 고음을 냈다.]로 낼 수 있다. [[로버트 플랜트]]의 가성이 날카롭다면, 프레디 머큐리의 가성은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 다만 프레디 머큐리도 로버트 플랜트처럼 샤우팅스러운 가성을 못 냈던 것은 아니다. [[It's Late]]에서의 가성을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로버트 플랜트 또한 부드러운 가성을 못 냈던 것은 아니었다. [[Kashmir(노래)|Kashmir]] 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라이브 기복이 있다는 것이다.[* 1986년 웸블리 공연 첫째날 밤(7/11)과 이튿날 밤(7/12)의 차이에서 볼 수 있다. 첫째날도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지라 목소리 갈라짐이 꽤 있었지만 둘째날처럼 탈진된 목소리는 아니었고 파워풀한 고음을 뿜어내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 다만 이는 [[로버트 플랜트]], [[이안 길런]] 등 당시 고음형 록 보컬리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단점이었다. 이는 정석적인 발성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닌 본인들만의 고유한 창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훈련받지 않은 목을 혹사시키는 창법을 사용한 이들이 세계 투어를 다니면서 성대에 피로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을 때의 라이브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며, 라이브 기복이 있다는 이유로 이들이 위대한 보컬리스트임을 절대 부정할 수 없다. 프레디 머큐리의 성대가 약했다는 추측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에서 순간적으로 성대근육을 조으고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호흡을 폭발시켜 벤딩없이 피치를 높이는 창법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는 음성학이 발달하고 보컬트레이닝이 보편화된 지금은 절대 권장되는 창법이 아니다. 일반인은 비슷하게 따라하기도 힘들며 숙련된 보컬리스트도 몇곡 부르고 나가 떨어질정도로 목에 무리가 간다.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는 이런 창법으로 거의 대부분의 곡을 소화하며 끝까지 기복없이 공연을 마친 사례가 다수 존재했다. 프레디의 성대가 유난히 약했다기보다는 다른 가수에 비해 성대에 무리가 가는 창법을 써야하다보니 기복이 심해질 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프레디 머큐리가 음악활동을 하던 70-80년대에는 컴퓨터 기술이 그렇게 발전했던 때가 아니고, 이를 감안하면 스튜디오에서 그의 가창력은 왜 그가 락 역사상 최고로 불리는지를 느낄 수 있는데, 라이브에서는 안 나오는 고음을 마구 난사하기도 하고, 저음도 굉장히 안정적이며, 발음도 정확하다.[* 이는 Jazz에 수록된 Dead on time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속도가 거의 랩 수준인데도 발음이 완벽하다.] 추가적으로 프레디 머큐리는 가성을 라이브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프레디가 세상과 작별을 해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진성에서 가성으로 넘어가면서 부르면 템포가 처질 것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나 Somebody to Love가 그렇다. 원곡엔 가성이 많이 포함되어있지만 거의 모든 부분을 진성으로 처리했다. 거의 모든곡을 진성으로 처리하다보니 컨디션 좋은 날과 안좋은 날의 차이가 더욱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프레디가 가성을 못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컨디션 안좋은 날에도 가성 고음을 뽐내는 경우가 많아 이유를 추정하기 힘들 뿐이다. 자신을 포함한 퀸 멤버들 모두의 곡을 앨범에 싣다보니 장르도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이 없다. 퀸은 발라드[* 대표적으로 Love of my life, 프레디 머큐리의 감성적인 보컬이 돋보이는 곡으로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디스코]][* [[Hot Space]]에 수록된 몇몇 곡들.], 성악[* 솔로 활동곡.]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선보였다. 70년대에는 미성 위주였지만, 70년대 후반부터 탁성까지 쓰면서 80년대 중후반부터는 미성과 탁성을 자유자재로 쓴다.[* [[Innuendo]]에 수록된 Don't try so hard에서는 70년대의 보컬이 되돌아왔다고 봐도 될정도의 미성을 내며, [[A Kind of Magic]]에 수록된 Gimme the prize에서는 굉장히 강한 하드락 분위기에 맞는 탁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성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데, 아름다운 가성[* Under Pressure 등.]을 보여줄 때가 있는가 하면, 이게 샤우팅인지 뭔지 분간이 안가는 괴성[* One Vision에서의 '''3옥타브 솔(G5)'''부분, It's Late에서의 '''4옥타브 미(E6)'''부분 등.]을 보여줄 때도 있는데, 이게 다 곡에 있어서 어색함이 없다. 1990년대 들어서는 1970년대보다도 더 가볍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1980년대의 폭발적인 성량과 노련한 발성 테크닉에 흡연 이전의 1970년대의 음색이 더해지며 소리가 더욱 날카롭고 명확하게 들린다. 퀸의 곡은 그렇게 어려운 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막상 약 2~3시간 진행된 프레디 머큐리를 추모하기 위한 콘서트에서 많은 유명 가수들이 퀸의 곡을 불렀지만, 원곡만큼 해냈다고 평가받는 무대는 [[조지 마이클]]의 Somebody to love, 씰(Seal)[* 흑인 팝가수로 항상 대머리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걸로 유명한데 프레디 추모공연에선 레게 스타일을 하고 나왔다. 히트곡으론 Crazy, [[Kiss from a Rose]], Fly Like an Eagle 등이 있다.]이 부른 Who Wants To Live Forever, 익스트림의 퀸 메들리 정도 뿐이다. 사실 이는 절대적인 난이도 자체가 엄청 높은 게 아니라 프레디'''만큼''' 올라가는 보컬은 찾아보면 많지만 프레디'''처럼''' 올라가는 보컬이 없기 때문이다. 프레디 머큐리의 진성 음역대는 '''0옥타브 파(F2)'''[* , , , ]에서 3옥타브 파(F5)[* ], 가성 음역대는 '''4옥타브 라(A6)'''[* <[[It's Late]]>1977년 BBC Session 라이브.][* 공연 중 최고음은 1979년 12월 6일 공연 의 '''4옥타브 파#(F#6)'''이다.]까지 선보인 적이 있다. 곡 중에서는 아니지만 '''0옥타브 도♯(C♯2)'''까지 내린 적도 있다. 한 인터뷰에서 로저가 말하길, "난 프레디의 최고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범접하는 음역대를 가진 남자 보컬리스트는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 '''0옥타브 도 ~ 4옥타브 시'''], [[건즈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 '''-1옥타브 파 ~ 4옥타브 라#'''으로 음역대가 알려진 모든 가수들 중에서 가장 넓다.]밖에 없다. || [youtube(qkuBUWykrIU)] || 80년대에 낸 솔로 싱글에는 자신의 음역을 과시하는 Exercises In Free Love란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노래에서는 그야말로 여성과 남성의 음역을 넘나드는 마성의 음역을 보여준다. 최고음은 '''3옥타브 파(F5)'''. 여성의 두성을 구사했다. 또한 당시 [[레드 제플린]]이 보급했던[* 레드 제플린 이전에도 [[더 후]]의 [[로저 달트리]]와 [[피트 타운젠드]]라는 보컬-기타 듀오가 있긴 했지만, 이를 대중화시킨 것은 [[플랜트-페이지]]였다. 또한 애초에 피트 타운젠드는 거의 서브 보컬에 가까울 정도로 보컬에 많이 참가했다.] 보컬과 기타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방식을 퀸 또한 받아들여서 프레디 머큐리는 보컬과 피아노만 담당했다.[* 그 외에 다룬 악기는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에서 기타를 연주하거나 일부 곡에서(대표적으로 [[Keep Yourself Alive]], [[Liar]]) 탬버린을 두들기는게 전부. 하지만 둘 다 그의 주 악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퀸이 처음 데뷔했을 때, 보컬과 기타가 철저하게 분리된 퀸을 보고 평론가들이 레드 제플린의 짝퉁이라고 많이 깠다고 한다. 물론 프레디는 애초에 밴드의 시작점부터 다르다면서 평론가들의 억지 주장을 반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